기업이 돈을 빌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 그리고 은행에서 직접 빌리는 것. 그동안 대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선호했습니다. 원하는 금액을 원하는 조건에 맞춰 조달할 수 있고, 은행의 대출 심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고금리 여파로 회사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기업들이 은행 대출로 자금조달 창구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따라 기업대출로 영업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은행의 전략과 맞물리면서 이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회사채 금리가 얼마나 올랐고, 은행 대출이 왜 더 매력적인지, 그리고 이 변화가 기업과 금융 시장에 어떤 의미인지 정리했습니다.
회사채 발행이 줄고 있다 — 수치로 보면
올해 들어 5월 27일까지 회사채 발행 규모는 53조499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9조2313억원 감소한 액수입니다. 회사채 발행액은 코로나19와 레고랜드 사태가 겹치면서 시장이 주춤했던 2022년부터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올해 증가세가 꺾였습니다.
같은 기간 은행 대기업 대출은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5월 기준 대기업대출은 전월 5조원 증가에서 5조2000억원 증가로 확대됐습니다. 회사채 상환을 위한 운전자금 수요가 은행 대출로 연결된 겁니다.
회사채는 금리 상승에 따른 발행 부담 등으로 은행 대출 등 대체조달 수단을 활용하면서 순상환이 지속됐습니다. CP·단기사채도 은행 대출을 통한 상환 등으로 순상환 전환했습니다.
회사채를 신규로 발행하는 게 아니라, 이미 발행된 회사채를 갚는 데 은행 대출을 쓰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 회사채 금리가 올랐나 — 6개월 새 1%포인트 상승
회사채 금리는 기준금리와 신용스프레드의 합산입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올랐습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선행해서 올랐습니다.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함께 오릅니다. 여기에 금리 인상 우려로 채권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신용스프레드까지 넓어졌습니다. 기업이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려면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합니다.
6개월 만에 회사채 금리가 1%포인트 오른 것은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인 충격입니다. 1000억원을 조달할 때 연간 이자 부담이 10억원 늘어나는 겁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이 차이가 수십억원, 수백억원으로 커집니다.
증권사 채권자본시장 관계자는 "요즘에 회사채는 기존에 발행한 채권을 차환하는 거래가 대부분이고 새로운 거래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내부적으론 조달 창구 지형이 회사채에서 은행 기업대출로 넘어가는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은행 대출이 왜 더 매력적인가
금리 경쟁력
1~2등급 우량기업의 경우 시중은행에서 기본 4%대 초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회사채 발행 시 적용되는 금리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우량 대기업은 신용도가 높아 은행 대출 금리도 낮게 적용받습니다. 회사채 금리가 5%대를 넘어선 상황에서 은행 대출이 4%대 초반이라면 당연히 은행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유연성
은행 대출은 만기가 고정돼 상환 압박이 있는 회사채에 비해 만기 연장이 쉽습니다. 회사채는 만기가 되면 반드시 갚거나 새 채권을 발행해 차환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나쁠 때는 차환 자체가 어렵거나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합니다. 은행 대출은 은행과의 협의를 통해 만기 연장이 가능합니다.
회사채를 발행할 때 투자자들의 매입 수요를 분석해야 하는 부담도 기업대출에는 없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요예측 실패 위험 없이 필요한 금액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각종 할인 방법으로 금리를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고, 회사의 사정에 따라 대출상품과 혜택을 고를 수 있으며 고정과 변동금리 등 이자 상환 방식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은행도 기업 대출을 늘리고 싶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따라 은행들은 가계대출을 줄이면서도 생산적 금융 활성화 정책에 따라 기업대출은 늘리고 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 우량 대기업에 대출해 주는 것은 리스크가 낮고 안정적인 수익원입니다. 대기업들이 은행 문을 두드리는 시점과,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확대하려는 시점이 맞아떨어진 겁니다.
이 변화가 금융 시장 전체에 주는 신호
채권 시장 위축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줄이면 채권 시장 유동성이 줄어듭니다. 채권에 투자하는 연기금, 보험사, 펀드 입장에서는 투자할 우량 채권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깁니다.
단기적으로는 채권 공급 감소로 기존 발행 채권의 가격이 오르는(금리 하락)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채권 시장 자체의 활력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은행 리스크 집중 문제
대기업 자금조달이 은행으로 집중되면, 경기가 나빠졌을 때 은행의 기업대출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리스크도 커집니다. 회사채 시장이 활성화되면 위험이 채권 투자자들에게 분산되는데, 은행 대출로 쏠리면 그 위험이 은행 시스템에 집중됩니다.
지금 회사채와 은행 대출 사이에서 자금 조달을 결정해야 하는 기업 CFO라면 단순히 금리 숫자만 비교할 게 아니라 유연성, 시장 상황, 장기 관계 유지 등 여러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행 대출이 유리한 국면이지만, 금리 방향이 바뀌거나 은행이 대출 정책을 바꾸면 다시 회사채 시장이 매력적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금 조달 채널은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분산해두는 것이 기업 재무 전략의 기본입니다.
참고자료
https://www.mt.co.kr/stock/2026/05/31/2026053016101110448
(머니투데이, 2026.05.31)
https://v.daum.net/v/20260611120306495
(SBS Biz, 2026.06.11, 한국은행 5월 금융시장 동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