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신용사면은 경제적 취약 계층의 재기를 돕는 구제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25조 원이 넘는 규모의 사면이 시행되며 역대 최대 인원인 293만 명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조치는 금융권의 대출 심사 원칙을 흔들고 신용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공존합니다. 신용 정보의 투명성이 결여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과 장기적인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신용사면 확대의 배경과 경제적 의도
정부가 신용사면 카드를 꺼내 드는 주된 배경은 경기 불황으로 인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서민들의 경제적 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함입니다.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은 정상적인 금융 거래가 불가능하여 경제 활동의 선순환 구조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원이 늘어날수록 국가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며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하게 됩니다.
지난해 단행된 사상 최대 규모의 신용사면은 팬데믹 이후 누적된 고금리와 고물가 상황에서 서민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됩니다. 293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연체 이력 삭제를 통해 다시 경제 활동의 주체로 복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는 소비 진작과 자영업 생태계 복구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정책적 선의와는 별개로 금융 시장의 근간인 정보의 대칭성이 훼손된다는 점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입니다.
금융기관은 신용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자금을 중개합니다. 신용사면을 통해 과거의 연체 기록이 일괄적으로 세탁될 경우 금융기관은 차주의 실제 상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결국 금융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연체 이력 정보 삭제가 초래하는 금융권의 혼란
대출 심사 과정에서 개인의 신용 정보는 대출의 승인 여부뿐만 아니라 한도와 금리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연체 이력은 해당 차주가 과거에 부채를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성적표와 같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신용사면으로 인해 이러한 핵심 데이터가 소멸되면서 금융 현장에서는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체 이력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첫째로 금융기관은 리스크 방어를 위해 대출 문턱을 더욱 높이게 됩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할 때 금융권은 보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며 대출 승인율을 낮추고 가산 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용 관리를 철저히 해온 선량한 차주들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되는 '역선택'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둘째로 우량 차주와 부실 위험 차주를 변별해내지 못하는 상황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위협합니다. 상환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에게 과도한 자금이 유입될 경우 향후 또 다른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별 은행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전체의 가계 부채 질을 악화시키고 금융 위기의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신용질서 교란에 따른 장기적 우려 사항
신용질서의 교란은 금융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요소입니다. 정부의 신용사면 정책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반복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됩니다.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보다 연체를 하더라도 사면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금융 시장의 원칙은 붕괴됩니다.
또한 신용질서가 흔들리면 금융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 불가능해집니다. 자금은 생산성이 높고 상환 가능성이 확실한 곳으로 흘러가야 경제가 성장합니다. 하지만 정보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자금이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 저하됩니다. 금융기관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 공급을 줄이게 되면 기업들은 사업 확장과 기술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확보하지 못해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불안정성은 경제 전체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신용자의 대출 접근성을 높여준다는 정책적 취지가 오히려 시장의 경직성을 불러와 전반적인 대출 공급 위축으로 돌아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용사면은 일시적인 처방이 될 수는 있으나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음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금융 생태계를 위한 정책적 제언
신용사면이 가져오는 단기적 혜택과 장기적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순히 연체 정보를 삭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차주의 상환 의지와 구체적인 재기 계획을 평가하는 정교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합니다. 성실 상환자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연체한 이들에게는 단계적인 신용 회복 절차를 제공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정부와 금융권은 신용질서를 보호하면서도 취약 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용 점수를 단순히 과거 이력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비금융 정보(통신비 결제 내역, 공공요금 납부 등)를 활용한 대안 신용 평가 모델을 고도화하여 정보의 공백을 메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차주는 자신의 상환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난해의 대규모 신용사면은 우리 금융 시장에 큰 숙제를 안겼습니다. 신용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금융 시스템의 생명과 같습니다. 사면의 혜택이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향후 정책 수립 시에는 정보의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포용적 금융을 실현할 수 있는 입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건강한 금융 문화 정착만이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