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기술 혁신 속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개정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2015년 발효된 1차 FTA는 양국 교역 규모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으나, 현재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중국 산업의 자립 심화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닥뜨리면서 그 실효성이 현저히 약화되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FTA 2단계 협상은 서비스 및 투자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기존 1차 협상의 불리한 구조를 개선하고 미래 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1차 FTA의 '기울어진 운동장' 진단과 개정 필요성
만성적인 대중 무역 적자 고착화와 교역 구조 변화
한중 FTA 발효 이후, 양국 간의 무역은 한때 3,100억 달러(2022년 기준)를 돌파하며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구조적 적자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경쟁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한국산 중간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3년 이후 대중 교역액은 FTA 발효 첫해인 2015년 수준으로 사실상 회귀하는 등 무역 규모가 감소세에 있습니다.
이러한 교역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 협정은 한국에 불리한 구조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FTA 재설계를 통해 무역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시점입니다.
상품 분야 관세 양허 구조의 불균형 해소
1차 한중 FTA는 상품 교역 분야에서 한국에 다소 불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한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해 95.2%의 품목에 관세 철폐를 약속한 반면, 중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양허한 비중은 92.2%로 약 3%포인트가량 낮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관세 철폐 속도의 차이입니다. 한국은 FTA 발효 즉시 6,000개가 넘는 품목의 관세를 철폐했지만, 중국은 1,000여 개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초기 관세 철폐 속도와 양허 폭의 비대칭성은 국내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이 중국발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의 충격을 완충 없이 받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2단계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1단계 상품 협정의 불리한 여건을 최대한 개선하고 보완하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2단계 협상의 핵심 의제: '높은 수준의' 서비스·투자 개방
네거티브 시스템 전환을 통한 시장 접근성 극대화
현재 진행 중인 한중 FTA 2단계 협상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시장 자유화를 목표로 합니다. 1차 협상 당시 양국은 '포지티브(Positive List)' 방식(개방하는 분야만 열거)을 채택하여 개방 폭이 제한적이었습니다.
2단계 협상의 핵심 목표는 시장 개방 방식의 패러다임을 '네거티브(Negative List)' 방식(원칙적으로 모두 개방하고 예외 분야만 열거)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한국 기업들이 중국 서비스 시장에 훨씬 예측 가능하고 광범위하게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며, 특히 지방 정부 차원의 비공식적인 진입 장벽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K-콘텐츠, 관광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
한국이 중국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규제로 인해 진출이 어려웠던 분야가 바로 문화, 관광, 엔터테인먼트, 의료 등의 서비스 산업입니다.
특히 'K-콘텐츠'와 연계된 공연, 미디어, 관광 산업의 경우 중국 내에서 발생하는 비관세 장벽과 불합리한 규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여행사의 중국 관광객 유치 활동 제한이나 한국 가수들의 공연 수익 정산 과정에서의 장벽 등이 대표적입니다.
2단계 협상을 통해 이러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한국 기업과 콘텐츠가 중국 시장에 원활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 장치를 확보하는 것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핵심 과제입니다.
미중 기술 패권 시대의 전략적 대응과 FTA 재설계
공급망 안정화 및 첨단 기술 분야의 규범 정립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 상황에서, 한중 FTA는 단순한 무역 협정을 넘어 공급망 협력 제도로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양국은 특정 품목에 대한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공급망 협력 의제를 공식적인 통상 외교 영역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이 핵심 산업 분야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리스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장치입니다.
디지털 통상 및 신규 무역 장벽(TBT) 규범 도입
현대 통상 질서의 주요 요소인 디지털 통상, 지식재산권,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규범이 1차 한중 FTA에는 미흡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경제의 핵심인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및 보호에 대한 규정을 새롭게 신설하여 전자상거래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여야 합니다.
또한, 환경 및 기술 관련 무역 장벽(TBT)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화장품, 의료 기기, 홍삼 등 중소기업 관련 수출 품목에 대한 인증 및 규제 절차를 간소화하고 상호 인정(MRA)을 추진한다면, 중소기업의 수출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TBT 완화는 단순한 행정 절차 개선을 넘어, 양국이 제도적 신뢰를 구축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것입니다.
기대 효과: 경제 구조 혁신과 제도적 신뢰 구축
미래 산업 육성 기반 마련 및 산업 구조조정 촉진
FTA 2단계 협상을 통해 서비스 및 투자 시장이 개방되면,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금융, 법률, 컨설팅, 콘텐츠)의 진출이 활발해져 한국의 산업 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고도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쟁 우위에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경쟁력이 약화된 분야는 구조 조정을 촉진함으로써,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을 개선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제도적 신뢰 확보 및 초국가 범죄 대응 공조
FTA 개정 과정에서 양국 간의 경제 및 경영 정책 통합이 논의된다면, 이는 단순한 무역 조항 수정을 넘어 장기적인 상호 신뢰를 높이는 기반이 됩니다.
특히 최근 증가하고 있는 보이스피싱과 같은 초국가적 스캠 범죄에 대한 양국 정부의 대응 공조를 FTA 협정 틀 내에서 강화하는 것은 국민 생활의 안정과 투자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제도적 신뢰 구축은 결국 양국 간의 경제 협력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고, 지속 가능한 공동의 이익 창출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론: 지속적 논의와 전문가 협력이 이끄는 새로운 통상 시대
한중 FTA 개정은 한국 경제의 생존과 미래 성장이 걸린 중대한 사안입니다.
1차 협정의 불리했던 구조와 미·중 갈등이라는 대외 요인을 극복하고, 서비스, 투자, 디지털 통상 등 미래형 의제를 중심으로 협정을 재설계해야 합니다. 양국 정부는 전문가 및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새로운 무역 협정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신속하게 연결해야 합니다.
이처럼 주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만이 한국 경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