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로 드러난 충격적 실태
한국수출입은행의 한계기업 여신 규모가 3조9026억원으로 집계되며 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4년 10월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한 정책금융기관의 무분별한 지원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 규모가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이는 수출입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한계기업의 정의와 경제적 의미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을 의미합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수익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회생 가능성이 낮음에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어 '좀비기업'으로 불립니다.
2024년 3분기 기준 한국의 상장사 중 한계기업 비중은 19.5%로, 주요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2016년 7.2%에서 8년 만에 2.7배 급증한 수치로, 국내 기업 환경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141개 기업에 대한 3조9천억원 여신의 문제점
수출입은행이 지원하는 한계기업은 총 141개사에 달합니다. 이들에 대한 여신은 단순한 유동성 지원을 넘어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 퇴출 메커니즘을 왜곡시킵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시장에 잔류하면서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둘째, 공적 금융기관의 한정된 자원이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정작 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소기업이나 신생 기업에 대한 지원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셋째, 고정이하여신 1조2000억원이라는 부실채권 규모는 향후 대손처리 시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납세자의 부담으로 귀결되는 구조입니다.
수출입은행 여신 정책의 구조적 한계
수출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수출 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여신 구조는 이러한 설립 취지와 괴리된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한계기업에 대한 지원이 단기 유동성 제공을 넘어 구조조정 지연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여신이 '선제적 리스크 관리'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기업의 재무상태와 회생 가능성에 대한 엄밀한 평가 없이 지원이 결정되면서, 부실채권이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정책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 시스템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계기업 증가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한계기업의 증가는 국가 경제 전반에 다층적인 부정적 파급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우선, 이들 기업은 고용 창출이나 세수 증가 같은 긍정적 경제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한정된 금융자원과 생산요소를 흡수하면서, 건전한 기업들의 성장 기회를 제약합니다.
한계기업은 도움이 필요한 기업에게 가야 할 지원금을 가로채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됩니다.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이 왜곡되면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 잠재력까지 훼손됩니다.
또한 한계기업의 존재는 제품과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합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저가 전략으로 생존하면서, 건전한 기업들의 수익성까지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선제적 리스크 관리 방안
수출입은행의 한계기업 여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여신 심사 단계에서 기업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엄밀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단순히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겪는 기업과 구조적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을 명확히 구분하고, 전자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둘째, 기존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단계적 구조조정 로드맵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지원 중단보다는, 회생 가능 기업에는 경영정상화 프로그램과 연계한 지원을, 회생 불가능 기업에는 질서 있는 시장 퇴출을 유도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셋째, 수출입은행의 여신 포트폴리오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한계기업에 집중된 자원을 성장 잠재력이 높은 수출 중소기업과 혁신 기업으로 전환하여, 정책금융기관 본연의 역할로 회귀해야 합니다.
넷째, 부실채권에 대한 선제적 대손 처리와 함께 충당금 적립을 강화하여 재무건전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향후 발생 가능한 공적자금 투입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정책금융의 올바른 방향
한국수출입은행의 한계기업 여신 4조원 문제는 단순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이슈를 넘어섭니다. 이는 정책금융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공적 금융기관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입니다.
회생 가능성이 낮은 한계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은 이러한 설립 취지를 훼손하며,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2024년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이번 실태는 정책금융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확한 시그널입니다.
향후 수출입은행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여신 심사의 전문성을 제고하며,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정된 정책금융 자원을 진정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 그것이 저성장 시대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